3월 5일 저녁에 열린 KBL 2경기에서는 모두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다. SK는 현대모비스에 29점 차 대승을 획득, 3일 KCC전에 이어 2경기 연속 20+점차 승리를 챙기며 EASL을 앞두고 치른 휴식기 이후 4경기를 3승 1패로 마무리했다. SK는 이제 EASL 파이널 포가 열리는 필리핀 세부로 떠난다.

최준용, 송교창의 동반 부상으로 위기를 맞았던 KCC는 소노 원정에서 대승을 거뒀다. 이날 KCC가 만들어낸 117점은 올 시즌 KBL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 110+득점 경기로 보면 리그 5번째다.

 

서울 SK(28승 18패, 4위) 105-76 울산 현대모비스(24승 22패, 6위)
서울 SK
자밀 워니 24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
오세근 16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
오재현 10점 5리바운드 7어시스트
울산 현대모비스
게이지 프림 19점 8리바운드
장재석 12점 2리바운드
미구엘 옥존 11점 3어시스트

1쿼터 : 34-23
2쿼터 : 24-17

3쿼터 : 22-23
4쿼터 : 25-13

SK가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29점 차 완승을 거두며 2연승을 질주했다.

이날 승리로 SK는 FIBA 휴식기 이후 치른 4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 3위 LG와의 승차를 0.5경기, 2위 KT와의 승차를 2경기로 좁힌 채 EASL 파이널 포가 열리는 필리핀 세부로 떠나게 됐다.

점입가경 2-4위 싸움(승차는 1위 기준)
2위 KT: 29승 15패, 승차 5.5
3위 LG: 28승 17패, 승차 7.0
4위 SK: 28승 18패, 승차 7.5

EASL 파이널 포 일정(한국 시간)
4강 1경기: SK vs 정관장(3월 8일 18시)
4강 2경기: 치바 vs 뉴 타이페이(3월 8일 21시)
3-4위 결정전: 1경기 패자 vs 2경기 패자(3월 10일 17시)
결승전: 1경시 승자 vs 2경기 승자(3월 10일 20시)

SK의 최근 상승세가 보였던 승리다. 자밀 워니(24점), 오세근(16점)을 포함해 5명의 선수가 두 자릿수 득점을 폭격했고, 1쿼터부터 현대모비스의 수비를 상대로 34점을 만들어내는 막강한 화력을 과시했다.

최근 SK의 공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오재현의 성장이다. 시즌 초반 상대의 새깅 수비를 유발하는 수비형 가드였던 오재현은 3~4라운드 구간에 미드레인지 게임을 중심으로 상대 수비를 폭격하는 스코어러 타입의 가드로 성장했다.

그리고 5라운드에 오재현은 또 한 번의 스텝 업에 성공했다. 2대2 게임에서 스크리너의 다이브(림으로 달려가는 동작), 팝아웃 찬스는 물론 상대 수비의 대형을 이용해 제3의 선수를 기회를 파생시키는 핸들러로 변모한 것이다.

전희철 감독은 3-4라운드 오재현의 득점 폭격 당시 "미드레인지 게임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오재현이 '포스트 김선형'이 되려면 핸들러로서 상대 수비 대형을 무너뜨리고 수비를 끌어당겨서 다른 선수들의 파생 찬스까지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오재현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가지 못했고 앞으로 그렇게 돼야 할 선수"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오재현은 단 한 라운드만에 전희철 감독이 기대하는 '넥스트 스텝'까지 도달한 모습이다. 전 감독 역시 현장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한 시즌만에 이렇게 성장한 선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대표에 다녀오고 나서 패스까지 눈을 떴다"고 극찬했다.

실제 경기 장면을 통해 살펴보자.

오재현이 볼을 운반해 하프라인을 넘어오자마자 SK가 리온-안영준의 더블 드래그 스크린을 활용해 3대3 게임을 세팅한다. 이때 허일영과 송창용은 양쪽 코너에 위치, 3대3 게임을 위한 스페이싱을 돕는다.

리온 윌리엄스의 절묘한 리스크린(스크린 각도를 바꿔 다시 스크린을 거는 것)을 활용해 미드레인지에 진입한 오재현은, 엉덩이와 등을 활용해 수비수 옥존을 밀어내며 미드레인지에서 공간을 확보, 한 번의 긴 드리블을 활용해 순식간에 페인트존 왼쪽 구역에 진입한다.

오재현이 펌프페이크를 하자 따라오던 옥존이 크게 점프하며 반응하고,  오재현이 이를 활용해 풀업 점퍼를 터트린다.

 

핸들러 오재현은 최근 복귀한 안영준과도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위 장면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오른쪽 사이드에서는 오재현이 최원혁의 핀다운 스크린을 받아 탑으로 뛰어 올라가며 워니의 핸드오프 패스까지 받는 줌 액션이 이뤄진다. 핸들러 오재현을 살리는 약속된 공격이다.

이때 공이 없는 왼쪽 사이드의 움직임도 주목하자. 워니가 오재현에게 핸드오프 패스를 하는 타이밍에 맞춰 오세근이 안영준에게 플레어 스크린(볼에서 멀어지는 스크린)을 걸어주고, 안영준이 코너로 이동한다. 이 역시 약속된 움직임이다.

핸드오프 패스를 받은 오재현이 지체 없이 코너로 이동하는 안영준에게 패스하고, 순간적으로 현대모비스 수비 대형이 베이스라인 부근을 완전히 비워버린 것을 발견, 안영준이 폭발적인 베이스라인 돌파로 파울을 얻어낸다.

오재현-안영준이 공격의 축으로서 시너지를 내는 전형적인 장면이다.

오재현의 최근 어시스트 기록 일지
2/28, vs 소노: 7개
3/1, vs 가스공사: 2개
3/3, vs KCC: 9개
3/5, vs 모비스: 7개

안타까운 것은 한 시즌 만에 이 정도의 성장세를 이뤄낸 오재현이 기량발전상을 수상할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KBL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신인상 수상자는 기량발전상 후보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오재현은 데뷔 시즌인 2020-2021시즌에 신인왕을 수상한 바 있다. 때문에 오재현은 새 규정이 유지되는 한 영원히 기량발전상을 받을 수 없는 선수가 됐다.

신인왕 출신이 기량발전상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은 세계 스포츠 리그를 통틀어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황당한 규정이다. 보다 다양한 선수들의 수상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신인왕 출신 선수들에 대한 역차별을 규정화함으로써 공정한 수상 경쟁을 막은 행위였다고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올 시즌 기량발전상 레이스는 오재현, 샘조세프 벨란겔(가스공사), 한희원(KT), 박인웅(DB) 등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주며 역대 가장 치열하게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레이스가 KBL의 새로운 규정 발표로 맥이 제대로 빠지게 됐다. 심지어 오재현은 현재 기량발전상 레이스에서 실질적으로 선두를 달리던 선수였다.

'기량발전상 자격 없는' 오재현의 스텝 업(22-23시즌 => 23-24시즌)
득점: 6.6점 => 11.4점
어시스트: 1.5개 => 2.5개
야투 성공: 2.4개 => 4.2개

페인트존 야투 성공: 1.3개 => 2.5개
야투 성공률: 41.9% => 44.0%
3점 성공률: 31.6% => 33.3%

 

최근 SK의 또 하나 눈에 띄는 포인트는 오세근의 반등이다. 정규리그 후반기 들어서도 부진에 빠져 있던 오세근이 이날 현대모비스전 포함 최근 4경기에서 평균 11.3점을 기록했다.

특히 위 장면처럼 자신을 막는 빅맨 수비수가 워니를 위한 지역방어 형태의 수비를 펼치며 안으로 처지거나, 반대 사이드에서의 2대2를 막기 위해 페인트존으로 내려가는 것을 45도나 윙에서 3점으로 공략하는 장면이 늘어나고 있다. 덩커 스팟(페인트존 세로 경계선과 베이스라인이 만나는 코너 지역)에서의 점퍼와 림 마무리가 불안했던 오세근이 3점이 살아나며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다.

혹은 위 장면처럼 스위치 수비로 발생한 미스매치를 활용해 페인트존에 자리를 잡다가, 드리블 돌파를 하는 워니를 위해 실 스크린(몸으로 자신의 수비수를 밀어내면서 드리블 돌파를 하는 동료 공격수의 돌파 공간을 만들어주는 스크린)을 걸어주는 등 오세근의 영리함과 노련함을 확인할 수 장면도 보였다.

시즌 내내 슛 밸런스가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오세근은 FIBA 휴식기 동안 일주일 가량 개인 훈련을 하며 몸을 다시 끌어올리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최근 4경기에서의 득점 페이스만 보면 '오사자의 플레이오프 모드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세근의 살아난 양궁 활용(3점슛 기록 비교)
직전 11경기: 3점슛 0/10
최근 2경기: 3점슛 4/5

한편 휴식기 후 첫 경기에서 정관장을 크게 누르며 쾌조의 스타트를 알렸던 현대모비스는 주말 소노-삼성 2연전에서 충격의 2연패를 당한 데 이어 SK전에서도 대패를 당하며 고비를 맞았다. 3연패.

대표팀 휴식기 전 정점에 달했던 속도전의 효과가 떨어지고 .3점슛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뼈아프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불안 요소였던 수비 붕괴까지 부각되는 모습이다. 3연패 기간 동안 현대모비스의 평균 득실마진은 -18.0점이었다. 평균 득점은 75.3점에 머물렀다. 현대모비스 코칭스태프는 휴식기 이후 평균 실점은 80점 후반대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실제 결과는 완전히 반대로 나오고 있다.

6일간 4경기를 치르는 일정이 고단했을 것을 감안해도, 최근의 공수 밸런스가 무너진 모습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양 소노(15승 31패, 8위) 85- 117 부산 KCC(24승 20패, 5위)
허웅 31점 10어시스트, 3점 5/11
라건아 26점 14리바운드
이승현 20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고양 소노
김지후 16점 5리바운드, 3점 4/8
전성현 14점 2어시스트
한호빈 13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

1쿼터 : 26-32
2쿼터 : 16-31
3쿼터 : 22-31

4쿼터 : 20-23

KCC가 고양 원정에서 소노에 32점 차 대승을 거뒀다. 최준용(손목), 송교창(발가락)의 동반 부상 이탈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만들어낸 의미 있는 승리다. 허웅이 30점 동반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승리에 앞장섰다. 오누아쿠의 무기력한 수비를 효과적으로 공략해낸 라건아(26점), 모처럼 공격에서 본연의 능력을 보여주며 시즌-하이 득점을 기록한 이승현(20점)까지 맹활약하며 소노의 수비를 무너뜨렸다.

117점을 올 시즌 KBL에서 나온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 4일간 3번째 경기였던 지난 3일 SK전에서 단 69득점에 그쳤던 KCC는 이날 소노전에서 올 시즌 5번째 100+득점 경기를 해내며 6라운드를 기대케 했다. 당분간 KCC는 허웅-이승현-라건아 체제로 순위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올 시즌 110+득점 기록 팀
DB(23/10/22, vs 소노): 110-89, 승
KT(23/12/24, vs 정관장): 113-85, 승
정관장(24/1/21, vs 현대모비스): 114-90, 승
현대모비스(24/1/28, vs 삼성): 116-78, 승
KCC(24/3/5, vs 소노): 117-85, 승

경기 후 허웅이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이날 KCC는 빠른 템포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상대 수비를 공략했다. 하프라인을 넘어온 후 드래그 스크린(빠른 타이밍에 세팅되는 볼 스크린)을 활용해 빠르게 전개되는 2대2 혹은 3대3 게임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수비 성공 후 빠른 전진 패스와 코트 질주를 통해 이지 득점을 다수 창출했다.

세트 오펜스에서는 오누아쿠의 느린 발과 게으른 수비를 이용하는 공격이 빛을 발했다.

위 장면처럼 이승현의 핀다운 스크린과 라건아의 핸드오프 패스를 활용해 3대3 게임을 전개, 오누아쿠의 느린 헷지 앤 리커버리 동작과 후반기 들어 매우 불안한 소노의 수비 조직력을 이용해 라건아가 손쉬운 페인트존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는 장면도 있었다.

이날 30득점을 몰아친 허웅은 위 장면처럼 탑으로 향하는 자신의 오프 더 볼 무브를 사전에 차단하는 탑 락(top lock) 수비를 역이용해 빠른 드리블 돌파로 림을 어택하는 등 공격에서 전천후의 모습을 보여줬다.

오프 더 볼 슈터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공격 전개를 주도하는 퍼실리테이터의 모습을 보여줬던 허웅이다.

이승현 역시 위 장면처럼 소노의 전매특허인 엠티 코너 픽앤롤(코너를 비운 사이드에서 전개되는 픽앤롤)을 깊은 드랍 헬프로 스크리너의 동선을 미리 잡아주는 특유의 활동량 넘치고 커버 범위가 넓은 수비를 보여주며 팀 수비의 중심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가드 수비수들의 스크린 대응 능력, 압박을 통한 드리블 돌파 저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라건아의 좁은 수비 범위 이슈가 있는 KCC로서는 위와 같은 이승현의 깊은 헬프 수비 능력이 필수적이다. 공격에서만 자신에 대한 새깅을 점퍼로 공략하는 장면이 늘어난다면 이승현은 더할 나위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셈이 될 것이다.

이승현의 15+득점 경기
21-22시즌: 19회
22-23시즌: 13회
23-24시즌: 4회

반면 소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진하게 많이 남는 경기다. FIBA 휴식기 후 치른 4경기 중 3경기에서 90+실점을 기록했고, 이날은 110점을 넘게 내주는 수비 붕괴를 경험했다.

최근 8경기 기준으로 봐도 소노는 90+실점 경기가 무려 5경기에 달한다. 선수단 전원이 트랩과 헬프 수비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승기볼' 특유의 수비법이 2월을 기점으로 노골적으로 공략당하고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대들보 치나누 오누아쿠의 수비다. 부상 여파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2대2 수비시의 움직임이나 볼 사이드 쪽을 견제하는 스턴트 후 후속 동작이 느려도 너무 느리다.

 

위 장면처럼 라건아로 쪽의 인바운드 패스를 견제하려다 놓치자 동료들에게 불만을 노출한 뒤 제대로 페인트존으로 돌아오지 않아 라건아를 완전한 자유 상태로 두는가 하면

엠티 코너 픽앤롤 수비에서 하이 드랍(높은 위치의 드랍 수비) 이후 베이스라인을 지키는 타이밍을 놓치고 핸들러 수비수와의 호흡이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날 소노 수비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됐다. 

소노 팀 수비의 축이 돼야 할 오누아쿠가 이런 식으로 수비 불안을 노출해서는 소노는 6라운드에서도 좋은 팀 수비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한편 허리 부상에서 돌아온 뒤 수도권 경기에만 출전하고 있는 전성현은 이정현과 함께 코트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 장면처럼 이정현이 전성현을 위해 플레어 스크린을 걸어주는 척 하다가 컷인하는 스플릿 액션 패턴도 있었고

이정현이 포스트에서 볼을 잡으며 아이솔레이션을 노린 뒤 전성현이 플레어 스크린을 받아 반대 윙으로 이동하며 3점 기회를 노리는 약속된 공격도 나왔다.

더불어 전성현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아 보인다. 1쿼터에는 위처럼 핀다운 스크린을 활용해 3점 라인에서 볼을 받은 후, 간결한 드리블을 통해 밸런스를 잡고 풀업 3점을 터트리는 모습도 보여줬다. 

소노는 전성현 복귀 후 출전한 최근 3경기에서 모두 패했지만, 전성현만큼은 이 기간에 평균 11.3점을 기록하며 부상 이전과 완전히 다른 슛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부상 여파로 제한받고 있는 수비력을 회복하는 것은 향후 관건. 허리 부상을 잘 관리하며 시즌을 마무리한다면, 내년 시즌에는 우리가 알던 슈터 전성현의 모습을 기대해볼 만하다.

복귀 후 3경기의 전성현
득점: 11.3점
야투: 12/25(48.0%)
3점슛: 9/18(50.0%)

사진 = KBL 제공, SPOTV 중계화면 캡쳐
기록 = KBL ST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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