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봐도 정말 재밌는 NBA, 경기장 밖에서 떠도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더 NBA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준비한 코너가 루키피디아다. 이번 시간은 NBA 정규시즌 중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대해 짚어본다.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팬들의 시선이 쏠리는 순간, 트레이드 데드라인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NBA 시즌 도중 팬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날 중 하나다.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전력 보강에 목마른 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데드라인 당일은 트레이드 소식이 몰리며 실시간으로 상황이 변화한다. 대어급들의 이적이 급물살을 타면서 성사되기도 한다. 트레이드 데드라인만의 묘미이며 국내 팬들도 미국의 현지시간에 맞춰 밤을 지새우는 일도 허다하다. 

현재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올스타전이 열리기 10일 전으로 올해 올스타전이 한국시간으로 2월 19일, 데드라인은 2월 9일이다. 과거에는 올스타전이 열린 뒤 곧바로 찾아오는 목요일이 데드라인이었지만 2017-2018시즌부터 올스타전이 개최되기 전으로 마감일이 변경됐다.

왜 NBA 사무국은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드마커스 커즌스의 트레이드 과정에서 데드라인이 올스타전 뒤에 있을 때의 부작용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NBA 최정상급 센터였던 커즌스는 2017년 2월 20일, 올스타전 당일에 뉴올리언스로 트레이드됐다. 리그 최고 센터 중 한 명이었던 커즌스의 트레이드 소문은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내내 돌았고, 올스타 관련 이슈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데드라인에 근접해서 트레이드가 결정되는 선수들은 브레이크 기간에 온전히 쉬지 못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짐을 싸서 가족과 함께 이사도 해야 한다. 후반기를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할 브레이크 기간에 쌓이는 부담이 크다. 

이에 NBA 측은 데드라인 날짜를 올스타전이 열리기 10일 전으로 조정했다. 이로서 팀들은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트레이드 작업을 마치고 선수 명단의 윤곽을 확정할 수 있게 됐으며 선수 이적이 새롭게 발생하면서 생기는 혼란도 더 피할 수 있게 됐다. 선수들도 트레이드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벌벌 떨면서 휴식기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 

아담 실버 NBA 총재는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올스타 이전으로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당기게 된 이유는 브레이크가 끝난 직후에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 뒤 “올스타 브레이크는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팀에 더 적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몇 년 동안 논의했던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거래 마감 시간이 원래는 오후 9시였지만, 조정에 조정을 거쳐 오후 3시로 바뀌었다. 이른바 ‘스캇 브룩스’ 룰로 휴스턴 선수였던 브룩스가 경기 도중 하프타임에 트레이드 통보를 받는 일이 생겨 선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사무국은 시간을 조정해 선수가 경기 중에 이적 통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백과사전 속 토막상식
가장 많은 선수가 데드라인에 짐을 싼 해는?

수많은 선수들이 팀을 옮기게 되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그렇다면 어떤 해에 가장 대규모로 데드라인 당일 트레이드가 이뤄졌을까? 트레이드 데드라인 관련 지표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7년부터 따졌을 때 과거보다는 확실히 최근 들어 대어급 선수의 이동이나 트레이드 숫자도 많아졌다. 

특히 지난해는 24개 팀이 12개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가운데 49명의 선수가 팀을 옮겨 기록 집계 후 가장 많은 선수가 트레이드된 연도가 됐다. 이어 올랜도발 트레이드 속출로 이목을 끌었던 2021년 데드라인이 48명의 트레이드 이적으로 간발의 차로 2위를 기록했다.

가장 적은 선수가 팀을 옮긴 연도는 1987년으로 한 명의 선수만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이적했다. 소극적으로 데드라인이 운영되다가 1996년에서야 19명이 팀을 옮기며 처음으로 두 자릿수 수치를 돌파했는데, 애틀랜타에서 뛰던 스퍼드 웹이 미네소타로 이적하는 등의 트레이드가 있었다.

누가 데드라인에 팀을 옮겼을까?

앞서 언급했듯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정규시즌에 팬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리는 날 중 하나이자 구단으로서는 전력 보강을 하거나 향후 노선을 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딜을 할 수 있는 날이다. 

이전까지는 전혀 트레이드 소문과 연관이 없는 선수도 갑자기 이적설이 급물살을 타면서 팀을 옮기는 것이 트레이드 데드라인의 특징. 어떤 선수라도 유니폼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점이 팬들이 몰입감을 가지고 데드라인 당일을 지켜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선수 본인에게는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스타들의 구단 내 파워가 점점 강해지면서 자유롭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문화가 강하게 형성됐고, FA로 굳이 팀을 옮기기보다 시즌 중에라도 트레이드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최근 슈퍼스타가 데드라인에 팀을 옮긴 대표적인 트레이드가 케빈 듀란트의 피닉스행이다. 

카이리 어빙이 팀을 옮기긴 했지만, 듀란트만큼은 브루클린에서 지난 시즌을 마칠 것으로 내다보는 시선이 많았다.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트레이드 시장에 정통한 소식통이 브루클린은 듀란트와 대화를 거치고 있으며 트레이드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결고리가 크지 않아보였던 듀란트의 피닉스행은 충격적이었다. 피닉스는 로버트 사버가 떠나고 새롭게 구단을 인수한 맷 이쉬비아 구단주가 트레이드에 힘을 실어주며 추진력을 얻었고, 미칼 브릿지스와 캠 존슨 등 애지중지 키우던 영건 자원에 1라운드 지명권을 4장이나 얹어 듀란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2023년 데드라인이 듀란트 트레이드로 시끄러웠다면 2022년은 같이 브루클린에서 뛰었던 제임스 하든이 주인공이었다. 

뛸 의사가 없었던 벤 시몬스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던 필라델피아는 시즌 내내 여러 스타들과 트레이드 소문에 연결됐다. 지속적으로 루머가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대릴 모리 사장은 추진력을 발휘, 시몬스와 세스 커리, 안드레 드러먼드에 지명권을 묶어 하든을 데려오는 빅딜을 성사시킨다. 조엘 엠비드-하든 듀오가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다.

다만 하든과 필라델피아의 동행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두 시즌 연속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 뒤 하든은 연장 계약 문제로 구단과 틀어졌고, 또 한 번 트레이드를 요청하며 떠날 채비에 나섰다. 결국 이번 시즌 초반 하든은 클리퍼스로 이적하며 필라델피아와의 짧은 동행을 마무리했다.

고민을 거쳐 트레이드 데드라인 당일에 진행한 트레이드로 효과를 봐서 당해 파이널 우승까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 트레이드 이적이 파이널 우승까지 이어진 선수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19년 트레이드 마감일에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마크 가솔이다. 가솔은 멤피스 ‘Grit&Grind’ 세대의 주역으로 활약한 센터. 카와이 레너드를 앞세워 우승을 노리던 토론토는 요나스 발렌슈나스라는 준수한 센터가 있었음에도 경험 많은 가솔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발렌슈나스 패키지로 그를 품는데 성공했다. 

가솔의 합류는 토론토 창단 첫 우승으로 가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가솔은 인사이드에서의 존재감을 바탕으로 공격보단 수비에서 존재감이 컸는데, 특히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던 필라델피아와의 2라운드 시리즈에서 조엘 엠비드를 꽁꽁 묶었다. 가솔의 활약이 없었다면 컨퍼런스 파이널도 밟지 못했을 수 있었던 토론토다.

‘악동’ 라쉬드 월러스도 데드라인 트레이드 후 당해 우승까지 맛본 선수다. 2004년, 포틀랜드에서 애틀랜타로 팀을 옮긴 뒤 단 1경기만 뛴 상태였던 월러스는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디트로이트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팀 케미스트리를 깰 수도 있어 위험 부담도 있는 영입이었지만 디트로이트의 승부수는 성공적이었다. 벤 월러스와 함께 ‘R&B 브라더스’로 뭉친 라쉬드 월러스는 배드보이즈 2기 멤버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디트로이트가 레이커스를 꺾고 NBA 정상에 복귀하는 데 공을 세웠다. 디트로이트는 이듬해에도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샌안토니오에 막혀 리핏엔 실패했다.

Behind Story
고대 괴수도 경험한 데드라인 당일 트레이드

올해 1월 23일 조엘 엠비드가 70점에 도달하며 신기록을 세우기까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구단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자는 윌트 체임벌린이었다. 체임벌린은 1967년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68점에 도달했는데 이 기록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본래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소속이었던 체임벌린은 1965년 팀의 재정적 어려움 속에 트레이드 데드라인 당일 필라델피아로 이적했다.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보내는 선수들은 체임벌린의 트레이드 가치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샌프란시스코는 15만 달러의 현금까지 받았다.

체임벌린은 필라델피아 이적 후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에 막혔지만 1966-1967시즌 마침내 NBA 커리어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어진 시즌까지 필라델피아에서 뛴 체임벌린은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며 다시 서부 지역으로 향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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