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봐도 정말 재밌는 NBA, 경기장 밖에서 떠도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더 NBA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준비한 코너가 루키피디아다. 이번 시간은 NBA 스타들이 모인 드림팀 멤버들이 미국 국가대표로 출격한 사례를 알아본다.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꿈의 팀이라는 뜻으로 환상적인 멤버로 구성된 팀을 가리키는 의미의 Dream Team(드림팀). 드림팀은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을 상징하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농구 종주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명성 높은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그들이 세계 무대에서 위상을 높인 것은 NBA 스타들이 본격적으로 대표팀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드림팀이 걸어온 역사에 대해 짚어본다.  

드림팀 1기의 출발 

과거 미국은 NBA 스타들이 아닌 NCAA의 대학 선수들로 로스터를 구성해 주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FIBA 대회는 물론, 올림픽에서도 프로들의 출전이 금지됐기 때문. NCAA를 대표하는 스타들로 구성된 라인업도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완벽히 열매를 맺은 선수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완벽한 드림팀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대학생 선수 위주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강한 전력을 보여주긴 했으나 독보적인 최강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라이벌 소련에 완패를 당하며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3위는 당시 미국의 올림픽 역대 최저 성적이었다.

이에 프로 선수들이 대회에 나설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수익 증대와 관심 증가를 원하던 FIBA가 룰 개정에 나섰다. 소련 측에서는 첫 몇 년은 국가대표에 포함할 수 있는 NBA 선수를 2명으로 제한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NBA 슈퍼스타들이 합류한 초호화 군단이 최초로 결성됐다. 특히 올림픽에 나선 적 없었던 매직 존슨의 경우 리쿠르팅에 열의를 보였는데, 라이벌이었던 래리 버드에겐 “코너에 서서 아무것도 안하고 내가 주는 공을 받아서 쏘면 된다”고 설득했고, 조던에겐 “너와 버드와 내가 같이 뛰는 게 버킷리스트였다”는 말로 드림팀 합류를 권유했다.

첫 10인 명단이 먼저 확정되고, 아이제아 토마스를 제치고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마지막 프로 선수로 합류했다. 토마스가 드림팀에 빠진 것은 꽤 논란이 일었던 부분. 여기에 NCAA 우승팀 듀크대의 크리스찬 레이트너가 막차에 탑승했다. 척 데일리 감독은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조던에게 캡틴을 맡기려 했지만, 조던이 거절하면서 매직과 버드가 드림팀의 주장을 맡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 로스터
감독 – 척 데일리
가드 –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존 스탁턴, 클라이드 드렉슬러
포워드 – 래리 버드, 찰스 바클리, 칼 말론, 스카티 피펜, 크리스 멀린, 크리스찬 레이트너
센터 –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당연히 이름값대로 드림팀의 저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 중계를 맡았던 마브 알버트는 드림팀과 다른 나라의 경기를 지켜보며 “마치 고등학생이나 초등학생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며 감탄을 보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에서도 드림팀의 저력은 강력했다. 무려 평균 43.8점의 득실 마진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페이스로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토니 쿠코치의 크로아티아도 드림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쿠코치는 이후 동료로 만나는 조던과 피펜에게 혼쭐이 났다. 

‘원조 드림팀’이 쌓아올린 금자탑은 상당했다. 그들은 현재까지 스포츠에서 나온 가장 압도적인 팀 중 하나로 꼽히며 드림팀 효과로 농구가 세계적으로 더 많은 인기를 창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FIBA는 2017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드림팀 그 자체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백과사전 속 토막상식
대학생들에게 무너진 드림팀?

무적의 1992년 드림팀이지만 처음부터 위력을 모두 발휘한 것은 아니다. 손발이 많이 맞지 않았던 소집 초기, 그들은 연습경기에서 그랜트 힐과 크리스 웨버, 앤퍼니 하더웨이 등으로 구성된 대학선발팀에게 패배를 당했다. 물론 이는 드림팀이 100%를 모두 쏟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자극이 될 만한 요인이 있었다.

당시 코치였던 마이크 슈셉스키는 연습경기에 대해 “척 데일리 감독이 일부러 경기를 던졌다”는 말을 남겼는데, 데일리 감독이 드림팀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에이스 마이클 조던을 많이 기용하지 않고, 로테이션 운영을 이상하게 가져가는 식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회상했다. 

충격요법이 통한 것일까? 다음날 열린 연습경기에서 드림팀은 다시 만난 대학 선수들을 시종일관 압도하며 전날과는 완전히 다른 경기 내용을 보였다. 여세를 몰아 큰 위기 없이 올림픽 정상까지 등극했으니 데일리 감독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 됐다. 

리딤팀의 등장, 그리고 미국에 또 찾아온 위기

드림팀 이후에도 미국은 계속해서 국제대회에 NBA 스타들이 포함된 로스터를 내보냈다. 1992년 멤버였던 바클리와 로빈슨, 피펜, 스탁턴에 샤킬 오닐 등이 추가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또한 금메달은 미국의 몫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초반부 미국 대표팀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안방인 미국에서 열린 2002년 FIBA 세계 선수권에서 6위에 그치는 수모를 겪은 것에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푸에르토리코에게 19점 차 대패를 당하고, 지노빌리의 아르헨티나에 무너지는 굴욕 끝에 동메달에 머물렀다. 그렉 포포비치와 팀 던컨의 최대 흑역사로 불리는 순간이다.

이에 변화에 나선 미국은 드림팀의 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던 대학 명장 마이크 슈셉스키를 사령탑으로 앉히고,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폴, 드와이트 하워드, 크리스 보쉬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세대교체에 들어갔다. 하지만 2006년 세계 선수권에서도 그들은 금메달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자존심 회복을 위해 열의를 보였다. 코비 브라이언트를 비롯해 정예 멤버로 로스터를 구성했고, 합숙까지 진행할 정도로 이전보다는 높은 강도로 담금질에 나섰다. 세계 최강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나선 이 팀은 ‘리딤팀’으로 불렸다. 

결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2000년대 들어 최고의 강팀이 탄생했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부터 스페인과 독일을 큰 점수 차로 대파하며 막강한 저력을 과시한 미국. 결승에서 재회한 스페인의 추격을 뿌리치고 승리를 획득하며 아테네 올림픽의 상처를 씻고 8년 만에 올림픽 정상으로 복귀했다.

리딤팀의 성공 여세를 몰아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르브론, 코비, 앤써니 외에도 재능 있는 선수들은 미국 내에서 계속 쏟아졌고, 2010년 터키 세계선수권,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FIBA 농구 월드컵,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모두 우승은 미국의 차지였다. 사실상 독주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국의 독주가 영원하지는 않았다. 빅네임들이 대거 빠지고 리그에서 주목하는 영건들 위주로 로스터가 채워진 2019년 중국 FIBA 월드컵. 미국은 2006년 이후 첫 패배를 당하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불안한 경기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프랑스와 세르비아에 패하며 7위에 그치고 말았다. 드림팀의 수모였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케빈 듀란트를 앞세워 금메달을 획득, 자존심을 회복했으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3년 열린 필리핀-일본-인도네시아 FIBA 농구 월드컵에서 다시 슈퍼스타들이 아닌 젊은 선수들 위주로 명단을 짠 미국은 2개 대회 연속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쓴맛을 봤다.

이에 다시 한번 정예 드림팀이 출격해 세계 최강의 자존심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미국 현지에서 쏟아졌다. 2023년 월드컵 대회 사령탑을 맡았던 스티브 커 감독 또한 좁혀진 유럽과의 격차를 인정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미국의 실패와 100% 연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존 인기스타이자 리딤팀 멤버였던 르브론 제임스가 파리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예 드림팀 재결성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스테픈 커리, 케빈 듀란트는 공식 석상에서 확실히 참가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여기에 그간 센터가 약점이었던 미국 대표팀은 지난 시즌 NBA MVP 조엘 엠비드가 미국 국적으로 귀화를 선택하면서 빈틈없는 로스터를 구축할 가능성이 커졌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로스터 밸런스가 좋은 드림팀이 탄생할 여지도 있다. 

Behind Story
드림팀 속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얼굴들

미국이 씻기 힘든 굴욕을 당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에메카 오카포는 코네티컷 대학의 2003-2004시즌 우승을 이끈 주역으로 당시 팀에서 유일하게 NBA 무대에 데뷔하지 않은 선수였다. 아테네에서 선배들과 같이 악몽을 겪었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한 번뿐인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오카포는 NBA뿐만 아니라 KBL 팬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한 팀의 주전 센터로 NBA에서 활약했던 그는 커리어 말년에 KBL 무대를 밟기도 했는데, 한국을 찾은 외국 선수 중 가장 압도적인 커리어의 소유자였다. 이를 입증하듯 나이가 무색한 수준의 뛰어난 수비력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KBL에 입성한 미국 농구인 중에 자국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KCC에서 역대 2번째 KBL 외국인 사령탑이 됐던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 그는 드림팀 결성 전 대학 선수들로만 나간 1988년 서울 올림픽 멤버로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FI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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